선배들의 이야기- 기자직
Home > 인재채용 > 선배들의 이야기 > 기자직군
안녕하세요 조선일보 사회정책부 최원우입니다. 사회부 최원우 조선일보에서 수습을 시작하고 이틀 만에 서울 마포구 어느 놀이터에서 눈물을 훔쳤습니다. 새벽부터 동네 파출소, 동사무소를 닥치는 대로 돌아다니며 기삿거리를 찾다가 밤 11시쯤 들어간 어느 119안전센터에서였습니다. 아버지뻘 되는 센터장께 재밌는 얘기하나만 알려달라고 읍소했는데 한참을 망설이시다 “우리 대원이 벽틈에 낀 고양이를 구조해준 미담사례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실망한 표정이 역력했던 제게 “고생하는 데 큰 기삿거리가 없어 미안하다”며 종이컵에 인스턴트 커피 한 잔을 내미는데,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복받쳐 “고맙습니다”하고 뛰쳐나왔습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시련은 나를 강하게 한다”던 입사 때 포부는 간데없고, 하루하루 버티기에 급급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어느덧 기자가 된 지 1년이 지났지만, 아등바등하는 건 여전합니다. 그래도 조금 먼저 이 길에 들어서 보니 미래의 후배분들께 들려주고픈 이야기가 많이 생겼습니다.

수습 시작한 지 1주일 됐을 때 아시아나 항공기가 떨어졌습니다. 데스크는 사고기에 탔던 생존자 인터뷰를 구해오라고 했습니다. 생존자 몇몇이 입원했다는 병원을 찾아갔지만, 병원관계자들이 개인정보를 알려줄 수 없다며 기자들 출입을 막고 있었습니다. 타사 기자들도 별 수 없다는 듯 응급실 근처를 기웃거릴 뿐이었습니다. 그래도 제가 할 수 있는 건 물어보는 일뿐이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여기저기 붙잡고 물어봤습니다. 큰 기대는 안했는데 한 안내원이 기적처럼 생존자 병실 호수를 알려줬고, 혼자 찾아가 애걸복걸한 끝에 단독 인터뷰를 따낼 수 있었습니다.

소치 동계올림픽 땐 한국 여자 쇼트트랙 대표주자 심석희 선수의 가족을 취재해야 했습니다. 가족은 심석희 선수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며 언론과 접촉을 피해 다녔습니다. 무턱대고 심석희 선수 자택에 찾아가길 수차례. 운 좋게 오빠를 만날 수 있었고, 이를 인연으로 아버지와도 전화하면 받아주는 정도 사이가 됐습니다. 하지만 심석희 선수 이야기만은 절대 해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번번이 거절당하면서 마음이 상하기도 했지만, 어떻게든 매일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아버지는 결국 “이렇게 끈질긴 기자는 처음 봤다”며 오빠가 심석희 선수에게 녹색 스케이트를 선물한 일을 비롯해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기자 생활을 조금 맛보니 도전정신이 중요하더라는 얘깁니다. 일단 부딪혀 보고, 될 때까지 시도해 보는 자세가 도움이 됐습니다.

근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바로 실패에 굴하지 않는 근성입니다. 조금 더 현장을 보겠다고 욕심 부리다 현행범으로 입건될 뻔한 적도 있고, 인터뷰를 원치 않는 취재원에 따라붙다가 멱살을 잡힌 적도 부지기수입니다. 아무리 용기를 내 들이대 보고, 한번이 아니라 열 번을 부딪쳐 봐도 뜻대로 안 되는 일이 수두룩했습니다. 그때마다 주눅 들고 좌절했다면, 기자 생활을 결코 견딜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실 조선일보 기자로 산다는 건 정말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저녁이 있는 삶은커녕 주말에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습니다. 일에서 느낄 수 있는 보람과 희열이 3이라면, 감내해야 할 고통이 97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뿐인 인생 치열하게 살아보고 싶다면 도전하세요. 두 팔 벌려 환영하겠습니다. 딱 죽지 않을 만큼 아프지만, 그만큼 성장할 수 있는 무대가 열려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아직도 매일 아침 손을 떨며 보고를 올리고, 수많은 취재에 일희일비하는 새내기 기자 54기 사회부 이동휘입니다. 사회정책부 이동휘 기자가 된지 이제 겨우 1년이 지났습니다. 출입처에서 개인이 아닌 ‘조선일보 기자’로서 활동하는 하루하루는 정말 긴장의 연속입니다. 조선일보 기자는 행여나 독자들에게 잘못된 사실을 전달 할까봐 분주히 사실 확인을 해야 합니다. 또한 몸가짐을 허투루 하면 그동안 선배들이 쌓아온 명성에 누가 될 수 있어 매사에 조심스럽습니다.

조선일보 기자로 일하면서, 잠을 많이 못 잘 수도 있고, 술을 많이 마셔야 할 수도 있습니다. 공부도 엄청나게 많이 해야 합니다. 정책들을 이해하려고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배움을 구해야 합니다. 더울 때 더운 곳에서, 추울 때 추운 곳에서 일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비가 와도 우리는 우산을 쓰지 않고, 수첩에 무언가를 적어야 합니다.

하지만 조선일보 기자, 정말 해볼 만한 일입니다. 조선일보 기사에 벼랑 끝에 섰던 사람들이 마음을 다잡습니다. 조선일보 기사에 새고 있던 세금이 절약되고, 우리 사회를 위한 정책이 만들어집니다. 아직 주니어 기자인 제가 여러분께 드릴 말씀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와 공동체를 위해서 일한다’는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고 싶다면 주저하지 말고 조선일보를 택하시기 바랍니다.

인재채용 코너에 쓰는 글이니 만큼, 입사 시험에 혹시나 도움이 될까 해서 뻔하지만 중요한 몇가지에 대해 적어 보겠습니다.

1. 신문을 열심히 읽어라.
입사시험을 준비할 때 “A선배가 1년치 신문을 다 외우고 합격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물론 나중에 거짓으로 밝혀졌지만,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1년치 신문을 달달 외운 보람은 있었습니다. 평소에 우리 신문을 열심히 읽는 것은 당연합니다. 특히 시험 전 몇 달치의 신문은 더더욱 열심히 보시기 바랍니다.

2. 필사(筆寫)를 해라.
“필사를 많이 하면 글 쓰는 데 도움이 된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을 겁니다. 하지만 정작 글을 베껴 쓰는 수험생은 많지 않죠. 신문에 실리는 칼럼이나 사설들은 자신의 관점과 의견을 어떻게 간결하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지를 보여주는 ‘바이블’입니다. 평소 우리 신문 사설이나 칼럼을 많이 베껴 써보면, 글을 잘 풀어 나가는 방법이 본인도 모르게 몸에 밸 것입니다. 나중에 세어보니 저는 약 200편의 사설과 칼럼을 필사했더군요.

3. 전공은 상관없다.
“너는 왜 경찰관 안 하고 기자가 됐니?”. 입사 시험 면접장은 물론이고, 취재원, 그리고 부모님마저도 제게 묻습니다. 저는 경찰행정학을 전공했습니다. 하지만 입사 시험에서, 회사 생활에서 불이익을 받은 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저만의 특이한 스토리가 됐죠. 많은 수험생들이 자신의 전공과 무관한 신문사에 지원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기자가 되는데, 전공은 상관없습니다. 경찰행정학도인 저도, 이곳 조선일보에서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입사 후 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이름 뒤에 따라붙는 ‘기자(記者)’라는 타이틀이 어색합니다. 취재는 녹록치 않고, 원고지 2장짜리 기사 쓰기는 여전히 고됩니다. 하지만 제 이름을 건 기사가 대한민국 최고의 신문에 실려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건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일입니다. 그 짜릿함을 함께 할 누군가를 기다리며 짧은 경험담을 나누고자 합니다.
국제부 이순흥 ◇기자의 숙명, ‘질문(質問)’
흔히 기자를 ‘묻는’ 직업이라고들 합니다. 각종 사건·사고의 관계자부터 장례식장을 지키는 유가족에게까지 성가실 정도의 질문을 합니다. ‘그런 것까지 물어야 하냐’, ‘뻔한 것 아니냐’는 반문으로 민망해질 때도 있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기자의 ‘판단’으로 채워진 기사는 ‘모래 위에 쌓은 성’처럼 부실하다는 것을 수습기자 생활 며칠 만에 체득하게 됩니다. 남에게 던지는 질문만큼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습관도 중요합니다. 특히 입사시험 전형 곳곳에서 자문(自問)은 필수입니다. 조선일보에 제일 먼저 자신을 드러내는 자기소개서는 ‘자문자답(自問自答)’ 그 자체입니다. 입사 전 가장 많이 자문한 질문은 ‘왜 기자가 되고 싶을까’였습니다.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라는 거창한 이유부터 ‘멋있으니까’라는 원초적 욕구까지, 사실 정해진 답은 없습니다. 다만 진정성은 반드시 드러나야 합니다. 엉성한 포장과 알맹이 없는 미사여구로는 면접관들의 날카로운 눈을 피할 수 없습니다. 본인이 꿈꾸는 기자가 되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했는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세요.

◇‘발’로 쓰는 기사
‘기자는 현생현사(현장에 살고 현장에 죽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현장을 직접 경험한 기자와 머릿속으로만 그려본 기자의 취재는 철저하게 구분됩니다. 수습 첫 날부터 지금까지 쓴 150여 편의 기사 중 기억에 남는 것들은 대부분 ‘발’로 쓴 기사였습니다. 기억의 강도와 제가 뛰었던 발걸음 숫자는 거의 정확하게 비례합니다. 마포대교에서 투신한 학생을 만나기 위해 1.6㎞ 길이 다리를 두 번 왕복한 경험, 3시간 동안 서울시 시의원 사무실 30여 곳을 돌며 실내온도를 잰 날, 집회 소음을 측정하기 위해 일주일 동안 서울 도심을 누빈 기억, 얼핏 무식해 보이는 취재는 그 어느 기사보다 정직한 기사를 만들었습니다. 입사시험에서 경험하게 될 르포기사 평가에서도 ‘발로 기사 쓰는 법’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저의 경우 ‘아웃도어 과소비 실태’라는 주제를 받고 현장에 나갔지만, 등산객들의 사뭇 다른 반응에 당황했습니다. 비싼 값에 아웃도어를 사 입는 등산객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세일 기간을 노려 전략적인 구매를 하거나 저렴한 브랜드를 선호한다고 답했기 때문입니다.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관악산, 북한산, 청계산을 취재한 결과 ‘아웃도비=과소비’라는 등식이 깨지고 있다는 점을 발견했고, 결국 ‘현명한 소비자에 고전하는 아웃도어 브랜드’라는 주제로 틀어 기사를 완성했습니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현장을 등한시했다면 결코 쓸 수 없는 기사였습니다.

저는 아직 가진 것보다 부족한 점이 훨씬 많은 ‘초짜’ 기자입니다. 하지만 짧지 않은 수험생활을 거쳐 조선일보에 조금 먼저 들어온 선배로서, 제 경험담이 여러분들에게 작은 도움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치열한 현장에서 함께 묻고 발로 뛸 후배님들을 기다리겠습니다.
“그렇게 유약해서 기자 할 수 있겠니?”
여론독자부 유소연 처음 기자가 되겠다고 했을 때 들었던 말입니다. 술을 잘 못해서, 성격이 세지 않아서, 잠이 많아서… 여러 이유로 망설이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하지만 소주 세 잔에 맛이 가는 저도 여기 있는걸요. 밤길 무서워 10시만 되면 후다닥 집으로 뛰어 들어가던 제가 새벽 3시에 아무도 없는 변사 현장을 찾아 헤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여러분이 어떤 사람이든 이곳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훌륭한 ‘기자 훈련소’입니다. 처음부터 ‘조선일보 기자’가 되고자 한 건 아니었지만, 1년이 지난 지금은 조선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한 것을 정말 다행으로 여깁니다. 제가 했던 시행착오를 조금은 줄여보십사 하는 마음에서 합격 직전쯤에야 알게 된 팁들을 적어봅니다.

1. 최고의 교재는 신문입니다.
막막합니다. 고시처럼 교재나 과목이 정해져 있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교재는 가까이 있습니다. 신문은 필기, 실무, 면접까지 모든 전형의 재료입니다. 기자가 되고 나서도 여전히 기사 공부를 위해 아침마다 신문을 정독합니다. 꼭 조선일보만 보란 말이 아닙니다. 여러 신문을 읽고 기사를 비교하면서 읽는 습관을 들였으면 합니다. 정신없는 수습기간 중에도 습관이 몸에 밴 동기는 틈틈이 신문을 읽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바쁜 일과 중 거르는 날이 많습니다. 후자인 저는 고생깨나 했습니다.

2. ‘다독 다작 다상량’이 능사는 아닙니다.
흔히들 많이 읽고 쓰고 생각하면 필기를 잘 볼 수 있다고 합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언론사 입사 논술도 엄연히 ‘시험’입니다. 좀 더 효율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분야에 상관없이 이틀에 세 권은 읽을 정도로 책을 좋아하던 저였지만, 필기시험이 다가와서는 방법을 조금 바꿨습니다. 논제에 맞춰 발췌독을 했습니다. 이를 테면 하루는 도서관에서 ‘경제 민주화’와 관련한 서적과 논문을 싹 다 찾아 목차를 보고 필요한 부분만 뽑아 읽었습니다. 그렇게 주제 별로 읽고 공부하다보면 글의 근거가 풍부해지고 자신만의 논거가 생깁니다. 경제 이슈는 삼성경제연구소, 외교안보 이슈는 통일연구원이나 국립외교원 사이트에서 자료를 보충했습니다. 중요한 수치(중산층 비율, 대외의존도, 실업률, 고령화지수 등)를 외워도 도움이 됩니다. 저도 첨엔 무식한 방법이라 생각했는데 현장 논술에서 ‘수치’라는 구체적 팩트를 더해주니 좀 더 글이 탄탄해지더군요. 단 무의미한 수치 나열은 곤란합니다.

3. 실무평가 겁먹지 마세요.
저 역시 그랬고, 많은 지원자들이 가장 막연해하는 전형이 아닐까 합니다. 취재하는 방법을 배우러 입사하려는데 취재시험이라니요! 언론사 인턴 경험도 없으니 더 겁이 나지요. 그러나 심사위원 입장에서 여러분이 쓴 기사는 다 함량 미달일 수밖에 없습니다. 참신함과 현장성으로 승부하세요. 제가 시험 볼 당시에는 열 가지 정도 주제가 주어졌습니다. ‘모 아니면 도’ 심정으로 자유주제를 택했고, 탈북여성 입장에서 스무 군데 정도 돌며 직접 일자리를 구해봤습니다. 훗날 평가에 참여했던 선배께서 제가 쓴 기사를 기억하며 “그게 너였니?” 하시더군요. 채점자 입장에서 비슷한 주제가 계속 나와 지루하던 차에 새롭게 느껴졌다고 하셨습니다. 대충 꾸며 쓰면 될 것 같아도 기사의 디테일한 부분이나 발로 뛰어다닌 흔적은 속일 수 없습니다.
정확히 1년 하고도 두 달 열하루가 지났습니다. 본지 지면에 제 이름 ‘李泰東’ 세 글자가 인쇄된 그 날 말입니다. 짧은 기쁨을 뒤로하고 입사해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습니다. 54기 이태동 인사드립니다.
디지털뉴스부 이태동 갓 1년 된 햇병아리에게도 추억이 많이 쌓였습니다. 입사 초기 6개월은 동기들과 '전우'가 되는 기간입니다. 여러분이 익히 아실 ‘경찰 기자’ 생활입니다. 얼마 전 한 방송 프로그램에도 소개된 적이 있는데, 여러분이 아는 ‘썰’과 방송에 나온 모습들 모두 사실과 비슷하지만, 조선일보는 조금 다릅니다. 사실 그 이하라고 보시면 마음이 편합니다.

얼마 전 입사 1주년을 기념해 전우들과 만났습니다. 마구 떠들어대다 보니 결국 나오는 건 ‘업무’ 얘기입니다. 근무 날엔 그렇게 쉬는 날을 기다리고 세상 모든 소식에서 떠나고 싶은데 신기하게 동료를 만나면 ‘뉴스’ 이야기가 먼저 나옵니다.

말할 때도 어휘가 적절한지 곱씹게 됐습니다. 사적인 내용으로 채팅할 때도 띄어쓰기가 신경 쓰여 열심히 글자를 들여다봅니다. ‘[단독] 이XX, ㅇ일 오전 광화문에서 낯선 여자와 손잡은 채 발견돼’ 우연히 거리에서 발견된 동기의 사생활이 이렇게 속보로 전파되기도 합니다. 일과 생활의 경계가 모호해진 이곳은 기자가 사는 세상입니다.

아무래도 눈 뜨고 있는 시간 대부분이 근무 시간이자 일의 연장이기 때문일 겁니다. 기자의 숙명입니다. 군인이 언제든 전투태세로 전환할 준비를 해야 하듯 기자도 빠르고 정확한 보도를 위해 늘 긴장해야 한다는 사실, 지난 1년 동안 처절히 배웠습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 여러분이 꿈꾸는 시간도 곧 다가올 겁니다. 지면에서 공고를 발견할 테고, 자기소개서를 작성해 제출할 겁니다.

저도 지난해 2월 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아직도 부족한 햇병아리지만, 여러분이 알 깨는 걸 도와드리고자 감히 몇 자 적어봅니다.

논술·작문 준비에 골치 아픈 분들 많을 겁니다. ‘논조’를 예상해 생각을 끼워 맞추지 마시길 권장합니다.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평소 생각했던 걸 잘 정리해 소신껏 나타내시면 됩니다. 논술·실무·면접 모두에 해당합니다.

제가 응시했을 때는 논술 과목에서 '권위와 권력은 상호 의존 관계인가 배척관계인가'라는 문제가 나왔습니다. 저는 한 대통령의 사례를 바탕으로 제 나름의 정의를 먼저 내세운 뒤 글을 전개했습니다.

작문은 '후배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을 편지로 쓰기'였습니다. 정말 제 생각대로 썼습니다. 다소 이상적인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좋은 답'을 생각한다기보다 평소 학교 후배들에게 하던 이야기를 그대로 적었습니다. 참고로 저와 몇몇 동기는 악필입니다. 글씨체 때문에 고민하지는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실무 단계에선 기발한 아이디어도 좋지만, 최소한 기사다운 형태는 갖춰야 합니다. 기사 하나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신문을 얼마나 읽었는지가 티가 납니다. 조선일보만의 스타일에 익숙해지시길 추천합니다. ‘1일 오전 4시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김모(여·30)씨의 집에 불이나…’와 같은 작은 부분을 기억하세요.

저는 '명동 일대 중국인 관광버스 불법 주차'라는 평이한 주제로 기사를 썼습니다. 백화점 주차장 직원, 구청 단속 공무원, 관광버스 기사, 일반 버스정류장 이용 시민, 중국인 관광객을 인터뷰했습니다. 관광버스에 탔다가 불법 주차를 단속하는 현장에 걸려 기사 아저씨와 골목을 빙빙 돌았던 게 기억에 남습니다.

면접은 이미지 트레이닝을 이용했습니다. 면접관으로 나올만한 분들을 상상해 연습했습니다. 예상 질문은 거의 나오지 않았지만 왠지 익숙하게 느껴지는 분들 앞에서 마음 편하게 치렀습니다.

짧은 기자 생활 동안 주워들은 바로는 ‘가르치면 성장할 것 같은’지원자가 유리하다고 합니다. 어설프게 예쁜 보석보단 투박하더라도 가능성 있는 원석이 낫다는 얘깁니다. 훈련받을 준비가 돼 있다는 걸 조선일보에 강력히 어필해 주세요.

햇병아리가 감히 자랑하길, 조선일보는 여러분을 훌륭한 싸움닭으로 키워낼 준비가 된 곳입니다. 수습 기간에 돌입하면 속세의 때가 벗겨지면서 조선일보 기자의 향기가 조금씩 피어오르게 될 겁니다.

시험을 준비하는 분들을 직접 만나게 된다면 이 얘기를 꼭 해드리고 싶습니다. 꿈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다가온 기회를 소중히 여겨 갖춘 능력과 준비한 것 안에서 최선을 다 해주세요. 11월쯤 조선일보 1면에서 당신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여러분의 최선을 응원합니다.
"사람냄새가 나서 네가 너무 좋아져“
가수 J모 씨는 애끓는 목소리로 노래합니다. 그리고 덧붙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네 모습, 꾸며지지 않은 네 모습, 그 아름다움에 빠져들어"라고 말이죠.
디지털뉴스부 윤형준 안녕하세요. 조선일보 54기 윤형준입니다. 기자와는 영 연(緣) 없는 학과를 나와, 이러저러한 삶의 궤적을 그려오다 덜컥 기자가 됐습니다. '가장 가까이서 사람냄새를 맡고 싶다', 제 지원동기였고, 이는 그대로 이뤄졌습니다.

기자는 신기한 직업입니다. '반강제로' 하루 세끼를 쫄쫄 굶는 날이 있는가 하면, 장장 3시간에 걸친 점심식사를 하며 거하게 막걸리를 걸치는 날도 있습니다. 하루 종일 노트북만 들여다보며 '노는 (것처럼 보이는)' 날이 있는가 하면, 10만원이 넘는 택시비를 하루에 지출해야 하는 날도 있습니다.

이처럼 30분 뒤의 미래도 알 수 없는 게 기자라지만, 이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 기자는 ‘사람냄새’를 맡는 직업입니다. 노래 가사처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리고 ‘꾸며지지 않은 모습’을 봐야 하는 직업입니다. 꾸며진 모습을 보는데 만족한다면 그건 더 이상 기자가 아니라 ‘홍보맨’일 겁니다.

문제는 사람냄새가 꼭 가사처럼 좋지만은 않다는 겁니다. 인간의 민낯은 그리 아름답지도, 순수하지도 않습니다. 말 속엔 독(毒)이 있고, 웃음 속엔 가시가 있습니다. ‘네가 너무 좋아지는’ 냄새가 아니라 참을 수 없는 악취가 나는 사람이, 세상엔 많습니다. ‘사람 냄새’(여러 의미에서) 풀풀 나는 경찰서 골방에서 기자직을 시작하게 되는 덴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에서 기자는 신기한 직업이라고 썼습니다. 하나 더 첨언합니다. 조선일보 기자는 그냥 ‘신기’가 아니라, ‘신기방기’한 사람들입니다. 취재를 ‘냄새 맡는 행위’에 비유하자면, 조선일보 기자는 ‘가장 오래’ 냄새를 맡습니다. 현장에 먼저 도착한 기자가 조선일보 소속이 아닐 수는 있지만, 항상 마지막에 나가는 사람은 조선일보 기자더군요.

오래만 맡는 것도 아닙니다. 조선일보 기자만 갖고 있는 유별난 감각이 있다면, 미각과 후각일 겁니다. 수많은 반주(飯酒)로 다져진 미각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기막히게 냄새를 감별하는 후각은 그저 경이로울 따름입니다. 어느 사람이 냄새나는 사람인지, 향(香) 속에 어떤 악취가 숨어있는지 기가 막히게 잡아냅니다. 하루 노동의 결과가 바로 다음날 눈앞에 펼쳐지는 이 시장에서, 괜히 오랫동안 1등을 유지하고 있는 게 아니더군요.

이쯤에서 궁금하실 겁니다. 그럼 그 ‘신기방기’한 사람은 어떻게 하면 될 수 있는지 말이죠. 누군가 ‘조선일보 입사 지름길’이라며 농담을 하더군요. “S대가 아니라면, 수능을 다시 보는 게 빠르다. 차선은 해병대나 특전사에 입대하는 거다. 이미 늦었다면 변호사나 의사 자격증, 석사 학위를 따라”라고요. 다행히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 반례가 여기 있습니다. 겁먹지 마세요. 누구도 여러분께 그런 ‘스펙’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대신 각오는 필요하겠죠. 어지간한 트레이닝으론 ‘보통’ 사람을 ‘신기방기’한 사람으로 만들 수 없을 테니까요.

다시 J씨의 노래로 돌아옵니다. 그의 ‘사람냄새’는 이렇게 끝납니다. "우물쭈물 하다가 너를 놓칠까 봐 난 미칠 것만 같아"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입니다. 사람냄새가 좋다면, 어떤 악취라도 받아들일 용기가 있다면, 우물쭈물하지 마시고 지원하세요. 향수 한번 뿌리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사회정책부 배준용입니다.
디지털뉴스부 배준용 기자는 사실을 쫓는 직업입니다. 자신의 사상과 생각을 표출하기 위해 기자를 선망하는 분들을 주변에서 많이 봤습니다. 저 역시 입사하기 전 그런 부류였습니다. 하지만 조선일보에 지원하신다면 이제 생각을 조금 달리해야 합니다.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다른 관점으로 해석된 사실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것이 진실에 더 가깝다면 자신의 생각을 유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조선일보는 언론입니다. ‘진실에 가장 가까운 사실을 독자에게 전달한다’는 언론의 기본 소임에 대해 한 번 더 고민해보시길 바랍니다.

기자는 여러 현장을 목격하게 됩니다. 저 역시 여러 사고 현장을 접했고 장례식장도 수차례 드나들었습니다. 그 때 가장 후회되었던 것은 냉정하지 못했던 제 자신입니다. 독자에게 전달해야할 중요한 사실을 생각하지 못하고 현장에서 맞닥뜨린 슬픔과 절규에 주눅들었습니다. 선배들에게 혼이 난 것보다 더 속상한 건 좋은 기사를 쓰지 못했다는 후회입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걸음마를 떼는 겸손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면 어느새 ‘기자’에 조금 더 가까워진 여러분을 보게 될 것입니다.

기자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감시견’이지만, 험난한 언론 시장에 놓인 근로자이기도 합니다. 신문의 현실은 녹녹치 않습니다. 온라인 뉴스시장이 성장하고 방송과 멀티미디어시장도 확대되고 있습니다. 한국 언론, 한국의 신문들은 지금 기회이자 위기이기도 한 중요한 시점에 놓여있습니다. 제가 장담할 수 있는 유일한 하나는 여전히 우리 사회의 여론과 언론의 방향을 이끌어 가는 것은 신문이라는 점입니다. 다만 조선일보에 지원할 여러분들이 치열한 언론 시장의 경쟁과 공공의 이익을 지키는 감시견의 역할을 어떻게 조화시킬 지에 대해 같이 고민했으면 합니다.

기자는 글을 쓰는 직업입니다. 하지만 글을 쓰기 위해서는 더 많은 요소들이 필요합니다. 낯선 것을 두려워하기 보다 호기심을 가지는 담대함, 모르는 사람과 거리낌 없이 친해질 수 있는 사교력, 팩트를 찾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자존심도 굽힐 줄 아는 처세술이 있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글감을 더 많이 모을 수 있습니다. 현장을 발로 뛰는 기자, 취재를 잘하는 명기자는 사실 ‘뛰어난 영업사원’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점이 부족하다고 해서 기자를 지원하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조선일보에는 다양한 유형의 기자, 그리고 훌륭한 기자들이 있습니다. 고된 수습시절을 배움의 시기로, 긍정적인 마음으로 보내고 나면 여러분이 존경하고 배우고 싶어했던 선배들을 조선일보에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