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원 여러분, 조선일보는 창간 103주년을 맞았습니다.
1920년 3월 5일 조선일보는 3·1운동 직후 엄혹했던 일제 강점기 하에서 우리 말과 민족혼을 지키고자 민간 한글신문으로 태어났습니다. 대한민국엔 100년 넘게 명맥을 이어온 기업이 10여개에 불과합니다. 그 중에서 조선일보처럼 100년 넘는 역사를 가지는 동시에 반세기 동안 업계 1위를 유지하고 있는 기업은 더욱 찾기 어렵습니다.
조선일보가 103년 역사를 거쳐오면서 1등 언론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우리 선배들이 치열하게 지켜온 저널리즘의 원칙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일보를 폐간까지 시켰던 일제, 온갖 압력과 악법을 동원해 언론을 길들이고 통제하려는 정치권력에 맞서 우리는 ‘할 말은 한다’는 정론직필과 ‘어느 곳에도 치우치지 않는다’는 불편부당의 저널리즘의 원칙을 지켜왔습니다.
‘조선일보에 나면 믿을 수 있다’는 평가를 해주는 독자들의 변치않는 신뢰와 사랑은 우리가 저널리즘의 원칙을 굳건하게 지켜나가고 있다는 믿음에서 나오고 있음을 잠시라도 잊어선 안될 것입니다.
사원 여러분, 우리는 이런 저널리즘의 원칙을 확고하게 지켜가면서 닥쳐오고 있는 거대한 변화에도 대응해야 합니다.
지금 미디어 업계는 구텐베르크 혁명에 버금가는 변화가 시작됐습니다. 글로벌 OTT의 부상으로 국내외 유수의 방송사, 영화 제작사가 하청업체로 전락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워싱턴포스트, CNN 등 글로벌 미디어 기업들도 대규모 감원까지 하고 있습니다. 국내외를 망라해 미디어 업계는 미래의 생존과 경쟁력을 위해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저는 디지털 전환이 기술의 문제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널리즘이란 근본을 지키지 못한 디지털 전환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저널리즘의 기본을 망각한 매체들이 디지털 환경을 활용해 우후죽순으로 등장해 사회에 심각한 해악을 끼치고 있습니다. 참으로 우려스런 일들입니다.
103년 역사의 조선일보에는 변화와 혁신을 이뤄낼 수 있는 DNA가 선명하게 각인돼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1924년 10월 13일 국내 최초의 신문 연재만화 ‘멍텅구리’를 선보였습니다. 1924년 12월에는 한반도에서 한국인이 주관한 첫 번째 라디오 시험 방송을 했습니다. 경성방송국이 정규 라디오 방송을 시작한 1927년 2월 16일보다 2년 3개월 앞섰습니다. 최초의 항공취재도 조선일보가 세운 기록입니다. 조선일보는 1934년 물바다가 된 남부지방에 비행기를 특파해 공중 취재를 했습니다. 이듬해에는 언론사 최초로 전용 비행기까지 구입했습니다.
1970년 온 국민이 흑백TV를 보던 시절, 생생한 컬러로 인쇄된 신문을 국내에 처음 도입한 것도 조선일보였습니다. 조선일보는 환경·IT 등 대한민국의 내일을 설계하는 화두도 끊임없이 제시해왔습니다. 1992년 시작한 친(親)환경 캠페인 ‘쓰레기를 줄입시다’는 3640개 사회 단체가 동참하며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조선일보의 환경 캠페인은 1993년 ‘배기가스 줄입시다’, 1994년 ‘샛강을 살립시다’로 이어졌습니다. 모두 대한민국의 산하를 바꾼 캠페인으로 기록됐습니다.
국내 언론사 가운데 최초로 정보화 섹션인 ‘사람과 컴퓨터’면을 신설하고 상설화한 것도 조선일보였습니다. 1995년 시작한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 캠페인은 한국이 IT강국이 되는데 초석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어린이·청소년에게 인터넷을 보급하고 교육하는 ‘키드넷(KidNet) 운동’은 전국 교사·학생·학부모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습니다. 1995년 오픈한 조선닷컴은 세계 최초의 동화상-음성뉴스 서비스, 하이퍼링크 기능을 갖추었습니다.
이처럼 조선일보는 어떤 언론사보다 앞장서서 새로운 도전에 나섰고, 결국 우리 사회의 혁신을 이끌어왔습니다.
사원 여러분, 저는 올해 신년사에서 조선미디어그룹에 도전이 충만한 한 해가 될 수 있게 해달라고 주문했습니다. ‘팩트 퍼스트’ ‘저널리즘 퍼스트’와 함께 ‘챌린지 퍼스트’를 추구해 나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 구성원들이 스스로 콘텐츠 크리에이터(contents creator)가 될 때 조선미디어 그룹의 미래도 밝게 그려질 것입니다.
조선일보 103년의 역사 속에 새겨져 있는 도전과 혁신의 DNA를 다시 한번 꽃피우게 하는 주인공은 사원 여러분입니다. 회사는 도전과 혁신으로 나아가는 여러분에게 아낌없는 지원을 할 것이며, 모든 사원들의 목소리에 더 많이 경청하겠습니다.
조선일보가 사원 여러분 개인과 회사의 가치를 동시에 창출할 수 있는 도전의 장이 되길 바랍니다.
오늘 30년간 회사를 위해 일해준 강경희·김태훈 논설위원을 비롯해 67명의 임직원 여러분이 근속상을 수상했습니다. 수상자 여러분 모두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조선일보사 사장 방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