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osunMedia Story
- [제10회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 “새로운 100년, 평화와 번영 뿌리내리게 최선” ‘기로에 선 세계: 구체적 해법을 찾아서’를 주제로 한 제10회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가 14~15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개최됐다. 이번 ALC 첫날에는 폴 라이언 전 미국 연방하원 의장과 니키 헤일리 전 유엔 주재 미국 대사가 기조연설에 나섰고, 둘째 날에는 영국 앤드루 왕자가 스타트업 경연대회 ‘피치앳팰리스 코리아 1.0’을 열면서 이틀 내내 전례 없는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ALC 첫날인 14일 개회식에는 문희상 국회의장, 이주영·주승용 국회 부의장,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사무총장, 한선교 자유한국당 사무총장이 참석했다. 국회 의장단과 여야 지도부가 한 자리에 모인 셈이다. 정부에서는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이개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국무회의 일정에도 불구하고 참석했다. 재계에서는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등이 참석했다. 방상훈 사장은 개회사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70여년 동안 유지돼온 국제 질서는 지금 커다란 전환점을 맞고 있다”면서 “오로지 이해타산에 따른 각자도생, 약육강식의 시대로 들어서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떨치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방 사장은 최근 외교·안보 현실에 대해 “한반도에서 전쟁과 대립 대신 평화와 번영의 기틀을 만들려는 대한민국의 주도적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라고 진단했다. 방 사장은 이어 북한과 관련, “한반도에서 진정한 평화와 번영은 북한 핵이라는 큰 산을 넘어야만 가능하다”면서 “북한이 핵개발을 계속한다면 대한민국과 세계는 도울 방법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하루라도 빨리 핵을 포기하고 정상 국가의 길로 나온다면 번영의 길이 활짝 열릴 것”이라며 “변화의 쓰나미가 몰려오는데 스스로 변화하지 않고 저항하면 휩쓸려 간다는 것을 북한 지도부가 깨달았으면 한다”고 했다. 방 사장은 이번 ALC에 4차 산업혁명 기술의 최첨단 현장을 눈앞에 펼쳐보이는 ‘테크페스트’, 한국 스타트업의 글로벌 시장 진출을 후원하는 ‘피치앳팰리스 코리아 1.0’ 등이 처음 도입된 것과 관련, “조선일보는 앞으로 한국 스타트업들이 세계 무대에 나가고 해외 스타트업들이 한국에 올 수 있도록 ‘글로벌 스타트업 고속도로’를 놓는 작업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방 사장은 개회사 말미에 “내년이면 조선일보가 창간 100주년을 맞이한다”면서 “다가오는 100년 동안 한반도와 세계에 평화와 번영이 뿌리내리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ALC는 2005년 첫 개최 이후 올해로 10회를 맞았다. 이번 ALC는 여러 가지 면에서 이전 기록들을 경신했다. 전체 참가자가 2104명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이번에 피치앳팰리스와 테크페스트가 도입되면서 ALC 전체 세션 숫자가 81개로 역대 최고였다. 전체 연사는 201명으로 앤드루 왕자, 라이언 전 의장, 헤일리 전 대사 이외에도 고촉통 전 싱가포르 총리,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 로타어 데메지에르 전 동독 총리, 이브 르테름 전 벨기에 총리, 마테오 렌치 전 이탈리아 총리, 에후드 올메르트 전 이스라엘 총리 등 전직 국가 수반급이 참여했다. ALC는 이번에도 대학생·대학원생 600여명에게 참관을 허용, 이들이 세계와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했다. 라이언 전 의장 등 주요 연사들은 “ALC가 미래의 리더가 될 대학생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고 있다는 사실에 감동받았다”고 했다. 2019.05.15
- ‘미스트롯’ 시청률 18.1%… 종편예능 새 역사 썼다 TV조선 ‘내일은 미스트롯’이 시청률 18%를 넘기며 역사적인 기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2일(목) 방송된 미스트롯 마지막회 시청률은 18.1%(닐슨코리아·유료방송가구 기준)를 기록해 또다시 역대 종편 예능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다. 마지막회까지 지상파·종편 종합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지켰다. 최고 시청률은 19.3%까지 치솟았으며, 2049 타깃 시청률도 5.3%를 기록하는 등 압도적인 시청률을 기록했다. 마지막회에서는 송가인·정미애·홍자·김나희·정다경 등 미스트롯 ‘톱5’가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이단옆차기, 용감한 형제, 윤명선 등 히트 작곡가의 신곡을 일주일 만에 완벽하게 소화해 내야 하는 1라운드 ‘작곡가 미션’과 자신의 절절했던 사연을 담은 2라운드 ‘인생곡 미션’을 통해 소름 돋는 트로트의 향연과 예측 불가 순위 대결을 펼치며 안방극장의 열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작곡가 미션에서는 준결승전 5위 정다경이 이전과는 다른 상큼한 무대로 ‘사랑의 신호등’을 소화하며 선공을 펼쳤다. 이어 김다희는 ‘까르보나라’를 완벽하게 선보이며 쇼케이스 같다는 극찬을 받았고, 홍자는 ‘훌라춤’이 연상되는 하와이안 느낌으로 ‘여기요’를 표현했다. 정미애는 ‘라밤바’를 선보여 관객들의 환호성을 자아냈고, 송가인은 ‘무명배우’를 본인의 고생을 녹인 절절한 감성으로 불러 극찬을 받았다. 이어진 인생곡 미션에서 1라운드 합산 결과 5등을 기록했던 정다경이 홀로 자신을 키워주신 어머니에게 감사함을 담은 노래 ‘약손’으로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김나희는 코미디언으로서 개인사를 숨기고 웃어야 하는 심정을 담은 ‘곡예사의 첫사랑’을, 홍자는 가수로 피어나기 위한 자신의 처지와 비슷하다는 ‘열애’를 불렀다. 정미애는 꿈을 접고 자신을 뒷바라지해 준 남편에 대한 고마움을 눈물로 털어내며 ‘장녹수’를, 송가인은 자신을 늘 겸허하게 만드는 노래라며 ‘단장의 미아리고개’를 열창, 소름끼치는 가창력으로 무대를 마무리했다. 결국 최종 순위 1위(진)는 송가인이 차지했고, 2위(선) 정미애, 3위(미) 홍자였다. 최종 우승이 확정된 뒤 송가인은 그제야 감추고 있던 음악적 고민을 털어놨다. 정통 트로트로 밀고 나갔지만 너무 옛날 노래를 부르면 트렌드에 뒤처질까 걱정했다는 것이다. 그는 “한 획을 긋는 트로트 가수가 되겠다”고 포부를 밝혀 열화와 같은 박수를 이끌어냈다. 이날 결선으로 막을 내린 미스트롯은 지난 2월 28일 방영이 시작된 이후 연일 화제의 중심에 올랐다. 특히 4월부터 11%를 넘기며 매주 종편 채널 예능 프로그램 시청률 최고 기록을 경신했고, 지난주 준결승전은 14.4%를 기록하면서 지상파 드라마 시청률까지 뛰어넘었다. 미스트롯은 본선 재방송도 5%대 시청률을 기록할 정도로 절정의 인기를 누렸다. 미스트롯의 열기는 계속된다. 미스트롯은 5월 4일(토)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 콘서트를 시작으로 인천·광주·천안·대구·부산·수원을 돌며 전국 투어를 한다. 특히 4일 첫 번째 서울 공연 전석 매진 후 추가 공연 문의가 쇄도해 예정에 없던 5월 5일 공연이 추가됐다. 미스트롯의 인기 비결로는 기존의 오디션 프로그램과 차별화된 구성이 꼽힌다. 출연자 간 지나친 경쟁과 갈등은 부각되지 않았다. 오로지 실력자들의 무대에 집중해 ‘듣는 맛이 있는 트로트를 보는 재미가 있는 트로트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스트롯은 지방을 전전하며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무명의 트로트 가수와 가요계에서 소외된 트로트 장르를 무작정 사랑한 일반인들이 만들어낸 각본 없는 드라마였다. 오디션 프로가 침체해 있던 시점, ‘누가 트로트 오디션을 보겠느냐’는 비판을 뚫고 과감한 도전을 한 끝에 주눅 들어 있던 트로트의 다양한 변주를 용기 있게 펼쳐내면서 안방극장에 또 다른 감동을 안겼다. 미스트롯은 전 연령층의 애청 프로그램으로 부상하며 ‘트로트는 중·장년층 전유물’이란 인식을 깨버렸다. 중장년층의 추억을 되살리는 것은 물론 젊은 세대들에게까지 트로트의 새로운 맛을 안기며 근래 볼 수 없던 새로운 기적을 만들어 냈다. 제작진은 TV 오디션 프로그램을 축제의 장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엄격한 심사 기준을 적용하는 대신, 참가자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데 주력했다. 네 명이 팀을 이루거나 듀엣으로 엮어 결코 혼자서는 보여주지 못하는 내면의 모습을 이끌어냈다. 마스터 군단의 ‘트로트 여제’ 장윤정과 ‘히트곡 작곡가’ 조영수는 예리하고 따뜻함이 어우러진 심사평으로 미스트롯 마스터 군단을 이끌었다. 여기에 관록의 노사연과 이무송, 신지를 비롯해 재기 발랄 붐, 신선한 시선으로 무대를 평가하는 ‘인피니트’ 남우현 등이 마스터 군단을 구성해 편견이 없는 심사를 주도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결승전 당일, 무대를 직접 경험했던 현장 관객들이 느낀 감동 점수가 참가자들의 희비를 갈랐다. 트로트가 가진 대중성을 감안해 관객 투표를 합산, 전문가에게 국한된 시선이 아닌 폭넓은 기준을 도모하고자 했던 제작진의 의도가 정확히 시청자에게 전달됐던 셈이다. 제작진은 프로그램이 흥행한 데 대해 “모두 다 ‘될 수 있을까’라고 의심한 미스트롯이 침체한 트로트를 향한 국민적 관심을 끌어냈다”며 “긴 시간 긴장감과 초조함 속에서도 노래해 준 참가자들, 호응을 보내준 시청자들께 감사하다”고 종영 소감을 전했다. 2019.05.04
- [방상훈 사장 창간 99주년 기념사] “미래의 100년에도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신문 되어야” 조선미디어 가족 여러분. 오늘은 조선일보가 창간 99주년을 맞은 날입니다. 35년 근속상을 받은 홍준호 발행인을 비롯한 48명 수상자분들에게 축하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들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제 조선일보 창간 100주년까지 정확히 1년 남았습니다. 100주년을 맞게 되는 조선일보가 그동안 최고 언론의 위상을 지켜온 것은 한국 언론계는 물론, 기업사에서도 보기 드문 업적이라고 자부합니다.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100년 전 3·1운동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오늘의 조선일보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일본 총독부는 연인원 100만명이 참가한 전국적인 저항에 직면하자, 강제병합 후 10년 만인 이듬해에 우리말 신문인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창간을 허용했습니다. 3·1운동이 있었기에 조선일보가 있는 것입니다. 조선일보는 3·1운동의 정신인 자유, 인권, 민주주의를 이어받아 우리말과 글을 지키고 민족혼을 일깨우며 독립으로 가는 징검다리를 놓았습니다. 조선일보 5대 사장을 지낸 신석우 선생은 상해 임시정부가 처음 사용했던 우리나라의 국호 ‘대한민국’을 발안하신 분입니다. 일제 강점기 좌우 독립운동가를 한데 묶은 신간회 운동을 주도했던 월남 이상재 선생, 9번의 옥고를 치르면서도 독립의 염원을 불사르셨던 민세 안재홍 선생, 민족자강과 민족주의의 상징이셨던 고당 조만식 선생도 모두 조선일보 사장을 지내면서 문맹퇴치와 민족의식 고취에 앞장섰습니다. 계초 방응모 선생은 ‘불편부당’ ‘산업발전’ ‘문화건설’ ‘정의옹호’를 사시(社是)로 제정하고 당대 최고의 문필가들을 기용해 조선일보 중흥의 토대를 닦았습니다. 대표적인 저항시인이었던 이육사 선생과 백석, 주요한, 박종화, 심훈, 김동인 선생도 조선일보 기자로 재직하면서 한국 근대문학사에 길이 남을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조선일보는 가시밭길의 연속이었습니다. 창간 첫해 조선일보는 지령 4호만에 총독부로부터 첫 압수를 당합니다. 당시 왕세자 이은과 일본 왕족의 혼인을 주요 기사로 다루면서, 왕세자와 먼저 혼약을 맺었다가 강제 파혼한 조선인 규수의 비통한 사연을 함께 보도하며 일제 정략결혼정책을 꼬집었기 때문입니다. 일본 총독부는 8만8000건이 넘는 본지 기사를 압수했고 네 차례나 정간을 명령했습니다. 급기야 1940년 8월 10일 동아일보와 함께 조선일보를 강제 폐간시켰습니다. 그러나 혹독한 일제의 탄압도 독립과 언론 자유를 갈망하는 선배들의 의지는 꺾지 못했습니다. 1930년대에 우리나라 첫 여성잡지와 소년잡지 창간을 주도했던 노산 이은상 선생은 훗날 “조선일보 기자들은 모두가 일제 총독정치에 항쟁의식을 갖고 민족을 의식하며 붓으로 싸웠다”고 회고했습니다. 해방 이후에는 분단과 6·25 전쟁을 겪었고,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에서도 지역갈등과 이념 대립이라는 장애물을 만났습니다. 정권에 밉보여 혹독한 시련을 겪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할 말은 하는 신문의 소임을 다해왔습니다. 포퓰리즘이 난무하는 최근, ‘그래도 조선일보는 할 말은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막중한 책임과 사명감을 느낍니다. 사원 여러분. 조선일보 100주년은 비단 조선일보뿐 아니라 한국 언론계와 독자, 나아가 우리나라가 다시 도약하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조선일보 창간 100주년을 미래의 100년을 준비하는 새로운 출발점이 되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본사는 이를 위해 염재호 전 고려대 총장을 대표로 모시고, 각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조선일보 100년 포럼’을 발족했습니다. 100주년을 기념하는 각종 기획과 행사는 이미 풍성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청년 100명을 해외로 보내 세계의 현장을 체험하게 하는 ‘청년 미래탐험대 100’ 프로젝트에 따라 1차로 선발된 50명이 조선미디어그룹 기자들과 팀을 이뤄 해외 곳곳을 누비고 있습니다. 하지만 창간 100주년을 1년 앞둔 지금, 조선일보가 처한 환경은 결코 녹록지 않습니다. 종이 신문의 감소세가 지속되고 있고 SNS와 온라인을 통해 범람하고 있는 가짜뉴스는 미디어업계 전체의 신뢰를 갉아먹고 있습니다. 조선일보의 비판을 불편해하는 세력은 조선일보를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공격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의 위상이 커지면 커질수록 조선일보 기사와 임직원 개개인을 바라보는 독자와 국민들의 눈높이도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과거 어느 때보다 높은 윤리의식을 갖춰야 하는 이유입니다. 본사가 2017년 10월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 등 존경받는 각계 원로들이 참여하는 윤리위원회를 발족한 것도 스스로를 경계하고 윤리의식을 고양하자는 취지입니다. 그렇지만 결코 기자 정신이 위축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기자정신’에 충실해야 합니다. 사실을 바탕으로 진실을 보도한다는 기자정신을 되새기면서 더 정확하고 품격 높은 기사로 한국 미디어를 주도해 나가야 합니다. 가짜뉴스가 범람하는 미디어 홍수 시대일수록 정론직필하는 신문의 역할은 더 커질 것입니다. 언론자유라는 숭고한 가치를 굳건히 지키고, 우리를 향한 정당한 비판은 자양분으로 삼아 미래의 100년에도 조선일보가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신문’ ‘국민이 기댈 수 있는 신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원 여러분, 조선일보 역사에는 ‘통합과 혁신의 DNA’가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1940년 일제에 의해 강제 폐간된 뒤 5년 3개월 만인 1945년 11월 23일 복간호에서 조선일보가 내세운 화두도 “소이(小異)를 버리고 대동에 합류하자”는 통합의 메시지였습니다. 이런 통합의 정신을 이어받아 조선일보는 2014년부터 통일 캠페인을 진행해왔습니다. 비록 2차 미·북 정상회담 결렬로 인해 ‘한반도 비핵화’ ‘평화 체제 구축’이라는 과제가 한동안 표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남북한의 모든 민족이 자유와 번영을 누리는 통일을 위해 조선일보가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통일 시대를 이끌어야 합니다. 조선일보는 또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는 기치를 내건 정보화 운동으로 한국이 IT 강국으로 부상하는 주춧돌을 놓았습니다. IMF 외환위기 때에는 ‘다시 뛰자’ 캠페인으로 국민들의 역량을 하나로 모았습니다. ‘쓰레기를 줄입시다’ ‘샛강을 살립시다’ 등 시대를 앞선 환경 캠페인은 우리 사회 전체에 일대 혁신을 일궈냈습니다. 100주년을 앞둔 지금, 우리의 혁신 DNA가 다시 빛을 발하도록 해야 합니다. 조선일보의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제2의 창간에 나서야 합니다. 100년간 종이신문에서 쌓은 경쟁력을 방송과 디지털에 성공적으로 접목하는 것도 우리의 과제입니다. 1등 신문에 안주하면 도태된다는 절박감과 위기의식을 갖고 새로운 100년의 위대한 꿈을 실천합시다. 2019.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