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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들의 이야기

  • 조선일보 고유찬입니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 제가 기자가 된 이유입니다. 낯선 곳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재밌습니다. 지루한 것을 못 참는 성격이라 대학 시절부터 강의실 바깥 세상이 궁금해 곳곳을 누볐습니다.

     

    기자가 되기로 결심했다면, 그 순간부터 기자처럼 살아보라고 감히 조언해드리고 싶습니다. 이슈가 생기면 무작정 현장으로 한 번 달려보세요.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자마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대사관으로, 2022년 대선과 지선 민심을 파악하기 위해 무작정 KTX를 탔던 저처럼 말입니다. 가이드북 한 권만 들고 인도를 배낭여행하고, 중국어 하나 못하면서 현지 어학연수를 떠났던 과거의 경험 때문입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6.1 지방선거 취재. 역시 일단 가보니 답이 있었습니다. 전남에서 출마한 국민의힘 기초단체장 후보 4명 전부를 만나 험지에서 출마한 그들의 이야기를 인터뷰 기사로 담았습니다.

     

    막상 기자가 되고 보니 호기심과 패기만으로 기자 일을 잘 할 수 있는 건 아니더군요. 인턴 기간과 6개월간의 수습 기간은 제게는 좌절의 연속이었습니다. 무엇이 기사거리인지에 대한 감이 없어 ‘이게 뉴스냐’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습니다. 선배들에게 매일같이 깨지며 사실관계 하나라도 두 번 세 번 확인하는 꼼꼼함과 치밀함을 익혀야만 했습니다.

     

    기자 생활이 여러분의 생각보다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내가 기자를 선택한 이유’를 결코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기자로서의 자부심과 뿌듯함이 여러분을 결코 지치지 않게 해줄 원동력이 되어줄 것이라 확신합니다.

  • 조선일보 김예랑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기자를 꿈꾸며 준비해왔을지 모르지만 조선일보 채용 홈페이지의 선배들의 이야기를 클릭했다는 건 신문기자에 대한 흥미가 있다는 의미일 겁니다. 어릴 적 드라마에서 보던 기자란 직업은 당차고 반짝거리는 이미지인데, 일을 시작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눈밑 그늘이 짙어지고 퇴근길에 그날 점심 메뉴를 기억 못할 정도로 정신 없는 하루를 보내게 됩니다. 그럼에도 여러분이 질문하는 일이 즐겁고 관찰하고 기록할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면 포기하기엔 이르다고 말해주고 싶네요.

     

    기자일을 시작하고 난 뒤, 두 가지 덕목의 중요성을 되새겼습니다. 첫째는 집요함입니다. 내 양심에 찝찝함이 남지 않을 때까지는 궁금하고 의심스러운 지점을 다 확인해야 지속적으로 좋은 취재를 할 수 있습니다. 설령 기사가 당장은 되지 않더라도 추후 연결고리가 되는 사건이 벌어질지 모르죠. 사람일, 세상일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늘 흘러가고 기자는 어떤 상황에 투입돼도 관찰과 기록을 하고 전달할 의무가 있기에 ‘전시’가 아닌 ‘평시’에 훈련이 돼 있어야 합니다. 의미없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아닌, 핵심을 꿰뚫는 질문이 튀어나올 수 있도록 훈련하는 일은 기자 준비를 하는 동안에도, 일을 시작한 후로도 계속 이어집니다.

     

    두번째는 겸손입니다. 모든 사람을 나보다 낫게 생각하는 태도가 상당히 실용적입니다. 직업윤리로서의 덕목인 것도 맞지만, 효과적인 취재에서도 상당히 유익한 처세술입니다. 영어 격언에는 ‘그 사람의 신발을 신다’라는 표현이 있죠. 완벽하게 되지 않더라도 항상 취재원의 눈높이를 헤아리는 것은 그렇지 않을 때보다 극적인 차이를 가져다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사가 재밌어집니다. 기자는 거시적인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오피니언 리더이기도 하지만, 먼저 관찰하고 기록하는 사람입니다. 헤아리는 시선을 담은 글은 독자들에게 더 친밀하게 다가갑니다.

     

    신문기자는 영상이 아닌 글로 현장을 그려냅니다. 발전된 기술로 실제 같은 영상에 비견되지 않는다 해도, 인류가 고대 근동 때부터 소통수단으로 써온 문자로 사실을 전달하는 일을 하는 신문기자는 고전이 여즉 사랑받는 것과 같은 이유로 명망이 있습니다. 얼마나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세세하게 기록하는지, 필요한 질문을 하는지 등, 기사의 가치를 결정하는 변인을 잘 염두에 두고 그에 맞는 여러분의 강점을 잘 키워나가고 단점은 잘 보완해나가길 바랍니다. 건투를 빕니다.

  • 조선일보 안준현입니다.

    이 글을 읽는 귀하는 기자라는 직업에 관심을 갖고 있겠지요. 혹은 이미 조선일보의 일원이 되겠노라 굳은 결심을 하셨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이 글을 읽고 꼼꼼히, '내가 과연 기자라는 직업이 맞을까?'라는 근본적인 시작점에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길 감히 바래봅니다.

     

    "기자 해볼만한 직업이야". 만나본 선배들이 이구동성으로 말씀하십니다. 기자는 꽤 경이로운 직업이기도 합니다. 기자는 記者. 기록한다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기'는 경이로울 기(奇)가 되기도, 재주 기(技)가 되기도, 남에게 기운을 주는 기(氣)가 되기도, 또 남에게 기생하는 기생 기(寄)가 될 수도 있지요.

     

    특히 대한민국 최고의 영향력을 가진, 또 타사 기자들이 인정하는 영향력을 지닌(2023 한국기자협회 설문조사 기준) 조선일보 기자라면 더욱 해볼만한 직업입니다. 본문 조사 하나에 의미가 바뀌고, 단어 하나에 사회가 바뀝니다. 제발 기사를 고쳐달라고 오는 전화를 받는 건 부지기수. 집회에 나가면 "조선이 왔으니 중요한 집회인가보다"며 들리는 수군거림. 다음 날 신문에 "왜 우리 회사는 조선 기사에 없느냐"며 CEO에게 혼났다는 홍보팀 직원들의 하소연을 들으면 더욱 실감나죠.

     

    그러나 저는 귀하께, "과연 내가 기자에 맞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드립니다. 아마 대부분 후기는 "이런 사람이 기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텐데, 저는 "이런 사람이 기자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첫째, 기자를 왜 하고 싶으냐에 명확히 답할 수 있느냐입니다. 입사 후 한 선배가 "왜 기자가 됐느냐?" 물으셨습니다. 답하지 못했습니다. 선배께선 그러시더군요. "벽에 못이 나와 누군가 다친다면, 못을 망치로 두들겨 벽에 넣는 것이 기자다". 부끄러운 기억입니다. 기자라면서 기자가 왜 됐는지 답하지 못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저와 같은 실수를 범하지 마시고, 왜 이 길을 걸어야 하는지 곰곰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둘째, 나만의 전략 무기가 있느냐입니다. 조선일보 기자들 모두 다른 환경에서, 각자 다른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기자로서 필요한 전략 무기를 보유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말을 잘 하고, 누군가는 글을 잘 쓰고, 누군가는 친화력이 뛰어나고, 누군가는 해외에서 여러 경험을 해봤고, 누군가는 외국어를 잘 하고, 누군가는 사회를 향한 시각이 일반인과는 다른 비범함을 보였습니다.

     

    셋째, 무엇인가 포기할 용기가 있느냐입니다. 기자를 택했다면, 무엇인가는 포기해야 합니다. 워라벨일수도, 우정일수도, 애정일수도, 가족일수도 있지요. 저는 기자가 되고 두 가지를 포기했습니다. 워라벨과 우정입니다. 기자에게 '퇴근'은 없습니다. 그냥 몸이 취재현장에서 집으로 갔을 뿐입니다. 밤에도 주말에도 연락을 받을 수 있는 것이 기자입니다. 우정도 흔들렸습니다. 대학교 동기들과의 술자리. 술에 취한 동기가 취기와 광기가 섞인 이야기를 했습니다. 열심히 듣고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동기가 그러더군요. "이러니 기자X들 앞에서 뭔 말을 못 하지"라고요.

     

    이 세 가지 질문에 답을 찾았다면, 이 험난한 길에 도전해볼만한 자격이 주어졌다는 뜻입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여러분을 후배로 만나뵙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 조선일보 박혜연입니다.

    새해가 되자마자 다이어리를 사지만, 몇 장 쓰지 못하고 다음 해를 맞는 편입니다. 진득한 건 젬병인 탓입니다. 언시생 때만큼은 예외였습니다. 익숙한 게으름 대신 불편한 꾸준함을 택했습니다. 문 앞에 도착한 조선일보를 집에 들이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아침 8시에 일어나지 않으면 벌금 3000원을 내야하는 '기상 스터디'도 했습니다. 그렇게 1년 동안 매일 3시간씩 지면 기사를 읽고 따라썼습니다. 스무 번 넘는 불합격 끝에 기자가 됐습니다.

     

    기자가 되니 더욱 불편한 일들이 펼쳐졌습니다. 수습 땐 캄캄한 새벽 5시부터 매일 20km 떨어진 강남경찰서로 달려갔습니다. 찬바람 쌩쌩 부는 경찰서 로비에서 '문지기' 마냥, 출입문으로 들어오는 모든 민원인에게 "어떤 일로 오셨냐"고 물었습니다. 대부분 거절 당하기 일쑤였지만 묻고 또 물어야 했습니다.

     

    가끔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도 해내야 합니다.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를 취재할 때였습니다. 인스타그램에 한 영상을 올린 스웨덴 대원을 인터뷰하라는 '초고난도 미션'을 받았습니다. 태풍을 뚫고 스웨덴 스카우트가 묵는 충남 천안의 한 대학으로 무작정 내려갔습니다.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대원을 찾기 위해,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Do you know who made this video?"라고 물었습니다. 2시간의 탐문 끝에 결국 대원을 찾아냈습니다. 해냈다는 짜릿함에 고된 여정이 씻겨나간 기분이었습니다.

     

    기자가 어렵고 불편해도 버티는 이유는 즐겁기 때문입니다. 매번 다양한 사람들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듣고, 뉴스의 현장을 가장 먼저 목격하는 일은 재미있습니다. 살아있는 생물처럼 움직이는 현장을 생생하게 담아내는 일은 짜릿합니다. 매일 다른 곳으로 출근하기 때문에 지루하지도 않습니다. 하루는 아기 판다 '푸바오'를 만나러 에버랜드를 갔다가, 다른 날엔 시위를 챙기러 세종대로로 나서는 게 기자의 일입니다.

     

    막막한 시간을 보내는 준비생 신분이 무척 괴로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를 갈고 닦는 준비 과정은, 결국 어떻게든 기자가 된 이후의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기자가 된 지금, "어떤 어려운 취재도 될 때까지 부딪히면 해낼 수 있다"는 마음으로 현장에 나섭니다. 언시생 시절 나를 갈고 닦아, 꾸준히 노력하는 습관을 들인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기자가 아니면 어떤 일을 했을 것 같냐"고 물은 적 있습니다. 저는 "내가 올림픽 메달리스트더라도 결국 기자를 도전했을 것 같다"고 답했습니다. 단단히 미쳤다는 눈빛으로 저를 쳐다보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어쩌면 이 일에 조금은 미쳐있는, 함께 오랫동안 즐겁게 현장을 누빌 후배님들을 기다리겠습니다.

     

  • 조선일보 양승수입니다.

    “이 판에 들어온 이상 기자를 하게 돼 있다”

     

    입사 전, 친한 선배 기자께서 제게 해주신 말씀입니다. 언론고시생들은 언론사 입사 시험을 지하철 2호선에 비유하곤 합니다. 언제 어디서 내릴지는 모르고 빙빙 도는 2호선이지만 결국에는 내리게 돼 있다는 겁니다. 정말 별말 아닌 것 같지만, 저는 이 말에 위로를 받았습니다. 저는 이 2호선에서 내리기까지 2년이 넘게 걸렸기 때문입니다. 조선일보에 인턴전형 3번을 떨어지고, 3번째 일반전형 만에 입사했습니다.

     

    공채가 뜨고 입사 시즌이 되면 저도 여러분처럼 이 사이트에 들어와 ‘선배들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그때마다 조선일보에 오고 싶은 마음은 계속해서 커졌던 것 같습니다. 다만 느끼는 감정은 달랐습니다. 처음 언론사 입사 시험을 준비하며 설렘을 가득 안고 ‘나도 여기에 들어오고 싶어’하며 보러 왔었다면, 나중에는 ‘도대체 나는 언제 이곳에 입사를 할 수 있을까’하는 답답한 마음에 들어오곤 했던 것 같습니다.

     

    그 답답한 마음을 풀고자 들어오셨을 텐데,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이야기와 지원자분들께서 듣고 싶은 말은 다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궁금한 건 ‘어떻게 합격할 수 있냐’일 것이지만, 그건 저도 정답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저는 제가 어떻게 붙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번 떨어졌다고 해서 ‘이 회사는 나랑 맞지 않아’하며 ‘못 먹는 감’ 취급을 한다거나 포기해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랬던 이유는 제가 ‘왜’ 기자가 되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 질문은 각자 겪은 경험에 따라, 지금 상황에 따라 다를 겁니다. 정형화된 정답도 없습니다. ‘이렇게 답해야 합격한다더라’ 같은 것도 허상일 겁니다.

     

    ‘어떻게 기자가 될 수 있냐’는 이미 다 알고 계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처음과 끝인 자기소개서를 잘 쓰고, 논술과 작문, 상식, 르포, 면접을 잘 보고. 그러기 위해서 ‘어떻게’ 보다는 ‘왜 내가 기자를 하고 싶은지’를 잘 고민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더 나아가 ‘왜 조선일보 기자가 되고 싶은지’ 답을 내리셨으면 합니다. 그 답을 내리시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내리시는 역이 조선일보가 될 것입니다.

     

    단번에 합격하는 사람도 있고 저처럼 몇 번을 떨어지고서야 붙는 사람도 있습니다. 포기만 하지 않고 ‘왜 기자를 하고 싶은지’ 그 마음이 꺾이지 않는다면 “이 판에 들어온 이상 조선일보 기자를 하게 돼 있다”고 믿으셨으면 합니다.

  • 조선일보 이민준입니다.

    이른바 ‘언론고시’를 준비하다보면, 기자는 ‘개인사업자’라는 조언을 자주 듣습니다. 직접 발제거리를 찾아 취재하고, “오늘 제가 이 기사를 내겠습니다”라고 보고하는 것이 기본적인 사이클이기 때문입니다.

     

    일견 맞는 말이지만, 저는 그다지 동의하지 못하겠습니다. 제가 조선일보 기자로서 경험한 8개월은 오히려 한 팀이 돼 최고의 기사를 낸 순간들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수습기자 생활을 시작한 지난해 12월말, 첫 주차에 경인고속도로의 방음 터널에서 큰 불이 났습니다. 이때 기동팀은 화재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현장팀 4명을 꾸렸습니다. 저도 선배와 함께 급작스런 지시를 받고 현장으로 출발했습니다. 과천으로 가는 50여분동안 회사에 있는 선배들께선 사고 지점의 방음 터널 공사업체 등 필수 내용을 취재해주셨습니다. 저를 포함해 현장으로 이동하는 팀원들은 사고 지점과 부상자 이송 병원 등 담당 지역을 나눠 취재에 착수했습니다.

     

    기자가 정말 개인사업자라면 폭넓은 보도는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모든 팀원이 함께 취재했기에 조선일보는 가슴 미어지는 희생자의 사연부터 전국 자동차 전용도로에 설치된 방음 터널의 화재 위험성까지 상세한 내용을 독자에게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유관 부서인 국토부에서도 장관이 직접 현장을 살펴보며 방음 터널의 자재를 교체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물론 홀로 이겨내야 할 상황을 수없이 맞닥뜨리게 될 겁니다. 영하 15도의 날씨에 버스정류장에 앉아 기사를 쓸 수도 있습니다. 무더운 날씨에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물 한잔이 간절한 순간도 찾아올 겁니다. 휴대폰이 꺼질까 싶어 보조배터리 서너개를 들고 다니는 것쯤은 일상입니다.

     

    지레 겁먹지 말라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어느 사건, 어느 현장을 챙기더라도 선배 기자들은 여러분들의 취재와 기사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는 겁니다.

     

    입사 후 사령장을 받던 날, ‘잘 하자’며 격려해주시던 사장님의 응원이 떠오릅니다. 함께 하게 될 여러분, 같이 잘 해봅시다.

  • 조선일보 정해민입니다.

    안녕하세요. 조선일보 정해민입니다. 약 1년 전 저도 이 페이지를 닳도록 들여다보는 언시생이었습니다. 제 글 또한 간절히 기자되길 바라는 누군가에게 작게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몇 자 적었습니다. 편히 참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어떤 사람들이 기자가 되는 지 궁금했고, 그 모습을 닮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후기 속 선배들의 모습은 제각기 달라 갈피를 잡기 어려웠습니다. 지나고 보니 그럴 수밖에 없던 이유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기자가 되는 지에 대한 명확한 답은 정해져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모두에게 저마다 특징이 있을 뿐, 캐릭터가 겹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자기가 생각하는 자기만의 색깔을 찾고 이를 전형 과정에 녹여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주 사소한 요소라도 자신의 특성을 드러낸다면 좋은 이야기 소재가 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신선한 대상에 끌립니다.

     

    ‘왜 기자가 되고 싶은지’와 ‘어떤 기자가 되고 싶은지’.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한 자신만의 대답을 마련해놓는 것이 좋습니다. 누군가에게 좋은 점수를 받는 대답을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모종의 이유로 업에 대한 확신이 흔들릴 때 붙잡고 버틸 수 있는 든든한 기둥이 될 것입니다. 남들에게 이야기하기 곤란한 답이라도 좋습니다. 다만 너무 막연한 이유가 전부라면 언젠가 한 번은 뿌리째 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기자를 하면서 조그만 바람에도 휘청이는 순간이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입을 모아 힘들다고 얘기하지만, 기자는 원하다 포기하긴 아까운 직업입니다. 기자가 아니었다면 경험해보지 못할 현장을 가고,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습니다. 어떤 취재원은 우리를 환대하고 다른 취재원은 우리를 홀대하지만, 어느 쪽이든 기자가 아니었다면 남일 뿐인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뿌듯한 기사가 나가면 환대의 기쁨은 제곱이 되고, 홀대의 슬픔은 옅어집니다. 하고 싶다면 망설이지 말고 우선 경험해보세요. 맞는 지 아닌 지는 나중에 결정해도 늦지 않습니다.

  • 조선일보 조재현입니다.

    “새벽 1시 25분에 1구 발견이요. 시내버스 기사래요.”

     

    기자들 5명이 모인 텐트로 지친 모습의 소방관 한 명이 걸어왔습니다. 14명이 목숨을 잃었던 ‘오송 지하차도 참사’에서 10번째 사망자가 발견된 순간이었습니다. ‘설마 무슨 일이라도 벌어지겠어’ 하는 마음으로 오전 8시부터 10시간 넘게 텐트에 앉아 있다가 ‘이제는 집에 가야겠다’ 하고 생각한 시점에 10번째 사망자 발견 소식이 들린 겁니다. 현장에 있던 5명만 아는 사실이었습니다. 새벽 2시 3분, 발 빠르게 인터넷에서 가장 먼저 속보를 냈던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기자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새벽 2시까지 현장을 지키는 건 상상도 못할 어려움이었습니다. 하지만 수습 첫날부터 지금까지 매일 새로운 어려움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던 새로운 과제가 매일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루는 홍대 한복판에서 외국인 관광객 10명을 찾아 인터뷰해야 했습니다. 처음 지시를 받았을 때는 암담하게만 느껴졌습니다. 전단지 하나 받아주기 어려운 세상에서, 낯선 사람 10명과 영어로 대화하며 이름과 나이, 국적까지도 따내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10명의 멘트와 신상을 메모에 가득 채우고 나면 왠지 모를 성취감이 그날 하루를 가득 채워줍니다. 마침내 지면에 기사까지 실리고 나면, 마치 앞으로 무슨 취재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근자감’도 생깁니다.

     

    하지만 하루만 자고 일어나면, 전날의 성취감이 무색하게 또다시 새 과제 앞에서 또다시 막막함에 빠집니다. 하루는 SNS에서 유명해진 특정 개인 한 명을 직접 찾아서 인터뷰하라는 과제가 주어지기도 했습니다. 그 사람을 알 것 같은 사람들에게 전화를 돌리며 읍소하고, 인스타그램으로 DM을 돌립니다. 200㎞ 넘게 떨어진 곳까지 달려가 거의 울다시피 취재를 마치고 완성된 기사가 지면에 실려 또 새로운 성취감으로 하루를 채운 적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고난을 겪으며 기사를 내고 나서는 “과연 내가 기자 일을 해낼 수 있을까”하는 걱정도 수차례 들었습니다. 하지만 기사를 읽고 감사의 메일을 보내는 독자들, 기사의 주인공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물어보는 독자들 덕분에 다음날 하루를 보낼 성취감을 얻었습니다. 당장 내일도 막막하고 지난한 취재의 과정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독자에게 한 줄이라도 더 새로운 정보를 전달하겠다는 정신으로 임한다면, 큰 성취감이 또 보답처럼 돌아오지 않을까요.

     

    어떻게 취재해야 할지 막막해하는 순간이 부지기수였지만, 그때마다 선배들의 조언 덕분에 하루하루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조선일보>가 ‘1등 신문’의 타이틀을 유지하는 것도 유능한 선배들의 충고와 노하우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능한 선배 기자들에게 배워가며 독자를 위한 질 높은 콘텐츠를 만들 여러분을 기다리겠습니다.

  • 조선일보 채제우입니다.

    “왜?” 기자가 되고 싶어 언론사에 재직 중인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입니다. 가짜뉴스가 판치고, 너도나도 기자라고 나서는 세상에서 왜 기자가 되고싶냐는 취지였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나의 역할을 찾고 싶다고 답했습니다. 역동 넘치는 현장에 스스로를 내던지다보면 보다 나은 방향으로 이끌리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돌이켜보니 순진한 발상이었습니다. 조선일보에 입사한 순간 사람들 눈에 저는 고민 많은 20대 청년이 아닌 한국을 대표하는 언론사의 기자였기 때문입니다.

     

    “왜?” 기자로 일하며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되묻는 말입니다. 올해 초 배달라이더로 일하던 40대 여성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는 근무 도중 사망했지만 산재를 적용받지 못했습니다. 안타까운 감정은 뒤로하고 기자라면 질문이 뒤따라야 합니다. 이 여성은 왜 배달 일을 했는지, 유독 라이더들의 교통사고가 많은 이유가 무엇인지, 많은 사람들이 말하듯 ‘난폭 운전’이라는 개인적인 실수로 결론 짓는 게 적절한지 등입니다. 취재해보니 높은 시급 때문에 부업으로 배달을 하고자 사람은 늘었는데, 2시간의 온라인 교육만 들으면 누구나 라이더가 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여러 배달 플랫폼에서 일거리를 구하고 일하는 시간이 짧은 근무 특성 때문에 산재보험 적용을 받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단순한 교통사고로 보이는 사건도 꼬리 무는 질문들로 그 배경에는 있는 시스템의 문제를 보여줄 수 있다는 예입니다.

     

    “왜?” 기자로 일한 지 1년 반이 지났습니다. 근무 여건이 좋지도 않고 매일 골치 아픈 질문이 머릿속 헤집는 일을 왜 하고 있냐고 묻는다면 “이것이 나의 역할인 거 같아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한 우물 안에서 평생을 살게 됩니다. 기자는 여러 우물을 퐁당퐁당 옮겨 다니는 혼종입니다. 그렇기에 몸 담은 우물마다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루하루가 순탄치 않을 수 있습니다. 후회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도전하지 않기에는 보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너무 아깝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도전에 좋은 결과가 있길 바랍니다.

  • 조선일보 김지원입니다.

    언론사 입사 준비를 갓 시작했을 때, ‘선배들의 이야기’ 페이지를 수십번 들여다봤습니다. 대체 어떤 사람들이 이 좁은 문을 뚫고 기자가 되는지, 기자가 돼서 어떤 일을 하는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아무것도 몰랐던 그때의 저보다 여러분은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 더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러지만 여러분이 무엇을 알고 있던 현실은 그 이상일 거예요. 어떤 일이든 직접 경험해 보는 것이 제일이지만, 이 업은 특히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일단 기자 일은 생각보다 더 재밌습니다.

    매일 세상에는 새로운 일들이 생기고, 우리는 매일 새로운 기사를 씁니다. 게임 할 때 했던 퀘스트 또 하는 게 가장 싫은데, 기자 일은 날마다 새로운 퀘스트가 주어집니다.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어쩌다 비슷한 주제의 기사를 쓸 때도 있지만, ‘전에 썼던 거랑 어떻게 다르게 쓰지?’ 하고 고민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일터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 점도 매력적입니다. 오늘은 광화문 집회 현장에 갔다가, 내일은 성수동 핫플레이스를 취재하는 식입니다. 내가 쓰고 싶은 기사를 위해 취재하러 다닐 때는 ‘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즐겁습니다. 사무실에 앉아 정해진 시간 동안 주어진 업무를 하는 것보다 좀 더 자율성이 보장되는 일에 흥미를 느끼는 성향이라면, 이 일에서 재미를 느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기자 일은 생각보다 더 괴롭습니다.

    자율성이 보장된다는 건 그만큼 내가 져야 하는 책임도 크다는 얘기입니다. 순간적인 판단 실수로 취재가 엎어졌을 때, 잘못된 정보를 기사에 실었을 때,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취재하고 기사를 쓴 기자 스스로 괴롭습니다.

    매일 새롭고 흥미로운 기삿거리를 찾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퇴근하고 “내일 뭐 쓰지” 고민하다가 잠들지 못하는 밤도 부지기수입니다. 큰 사건이 터지면 ‘9 to 6’나 ‘주 52시간’은 나와 상관없는 일이 된다는 건 이미 잘 알고 계시겠죠.

     

    그래도 저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재미와 괴로움이 뒤섞인 채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면 가끔 ‘기자 하길 잘했다’는 순간이 찾아오거든요. 30분 이상 쉬지 않고 달리면 극도의 행복감을 느낀다는 ‘러너스 하이’와 비슷한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엇보다 조선일보 기자로 살고 있어서 그런 순간이 생각보다 자주 찾아오는 것 같기도 합니다. 좋은 선배들에게서 배우며 어느 순간 더 성장한 나를 발견할 때, 내가 내보낸 기사가 세상을 돌아다니며 많은 사람에게 읽힐 때 더없이 행복합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도 그런 순간이 곧 찾아오길 바랍니다.

  • 조선일보 김민기입니다.

    저는 장례식장 취재를 싫어합니다. 불청객으로 빈소를 찾아 슬퍼하는 유족들에게 “고인은 왜 세상을 떠나셨느냐” “생전 남기신 말은 무엇이냐”고 물어보다보면 저도 정신적 고통을 받습니다.

     

    타인의 직업을 비방하는 게 너무나도 쉬워진 시대입니다. 특정 직업군으로 사람들을 싸잡아 욕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의사·판사·검사·경영인들이 이렇게 비난받고, 기자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제가 쓴 기사에 저를 욕하는 댓글이 잇따라 달린 적이 있고, 온라인상에 떠도는 ‘기레기’라는 표현은 사실상 고유명사가 됐습니다. 저도 사람인지라 언짢은 감정이 생기곤 합니다.

     

    저도 경험이 부족해 이런 말하기 민망하지만, 기자에게 필요한 것은 약간의 책임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장례식장을 취재하는 사람을 통해 누군가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지곤 합니다. ‘장례식장 등 현장을 다녀야 한다’는 작은 책임감이 기자에게 있을 때, 억울한 누군가는 세상에 호소할 수 있게 됩니다. 또 기자에게는 약간의 꼼꼼함도 필요합니다. 누군가 기사가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다며 댓글에서 욕할 때, 제가 복수의 사람들에게 수십 통의 전화를 하며 기사를 ‘맞는 내용’으로 확인했다면 저는 당당합니다. 꼼꼼함은 나를 위해서도 필요한 무기입니다.

     

    여러분들이 조선일보에 들어와 현장 이야기를 글로 남기는 작은 보람을 함께 느끼면 좋겠습니다. 나를 반기지 않는, 곤란한 현장을 함께 다니며 서로에게 힘이 되면 좋겠습니다. 누군가는 남이 쓴 글을 확인 없이 퍼 나를 때, 우리는 함께 사실을 확인해 보도하면 어떨까요. 회사에 경험·노하우 있는 선배들이 많습니다. 함께 배우며 성장하는 기자가 됐으면 합니다.

  • 조선일보 김동현입니다.

    기자 지망생분들께 몇 가지 조언을 드리고 싶습니다.

     

    현장을 미리 경험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언론사나 유관 기관 인턴과 같은 기회들이 있습니다.

     

    저는 기자가 글 쓰는 직업인 줄만 알았습니다. 학원들에선 기자 지망생들에게 글쓰기만 거의 시키니까요. 정답은 없습니다만, 적어도 저년차 기자들은 글보다 현장에 훨씬 가깝다는 걸 늦게서야 알았습니다.

     

    현장을 경험하면 좋은 이유는, 해보고 나서 ‘이 길이 내 길이 아닐 수도 있다’란 걸 판단할 기회가 주어진단 것입니다. 수박 겉핥기로나마 현장을 경험한 사람과 아닌 사람은 마음가짐의 차이가 큽니다. 현장 분위기를 알고 난 뒤에도 기자가 하고 싶다면, 혹은 외려 더 가속이 붙었다면 그 지망생의 입사 준비 과정은 훨씬 수준 높아질 것입니다. 만약 ‘이 길은 내 길이 아니’라고 결정하게 된다면, 그건 그 나름대로 좋은 결정일 것입니다.

     

    현장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 중에선 조선일보 겨울·여름 인턴 제도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업무의 질이나 난이도, 환경이나 동료들 등 여러 부분에서 현장을 경험하기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붙는 게 쉽진 않습니다. 그래도 공개채용에 비해선 절차가 많이 간소화돼 있습니다. 꼭 도전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또, ‘자기 것’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이 축구 게임에서 공격·수비·패스 등 능력치 두루 갖춘 ‘육각형 인재’ 같이 밸런스 좋은 사람이 아니라면, 자신을 기억할 수 있는 주제를 하나 골랐으면 합니다. 복잡한 채용 과정에서 지원자 한 명이 담당자들의 기억에 남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로 ‘이것’하면 당신이란 생각이 들게, 회사 입장에선 ‘이런 인재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제너럴리스트가 될지, 스페셜리스트가 될지는 기자가 되고 나서 고민해도 늦지 않습니다.

     

    주제라고 해서 끈기나 열정, 성실함처럼 추상적인 걸 말하는 게 아닙니다. 제 경우 전공을 앞세워 이력서나 자기소개서 등 주제를 최대한 통일하고자 했습니다.

     

    글을 많이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절차가 많지만, 결국 언론사 채용 과정에서 가장 변수는 논술 시험이기 때문입니다. 쓰며 배우는 사람, 들으며 배우는 사람, 고치면서 배우는 사람 등 많지만 읽으면서 배운단 건 모두가 같을 것입니다. 제 경우 조선일보 같은 신문, 인터넷 기사, 대학 강의에서 나눠주던 페이퍼들을 꼼꼼히 읽곤 했습니다. 재밌게 읽은 기사나, 칼럼 두세개 정도는 모조리 외운다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얕은 지식과 경험으로 조언들을 늘어놓았습니다. 제 조언 없이도 잘 해내실 거라 믿습니다. 현장에서 뵙겠습니다.

  • 조선일보 유종헌입니다.

     안녕하세요, 조선일보 유종헌입니다.

     

     이제 입사한 지 1년 반 남짓밖에 되지 않은 제가 어떤 말을 적을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취업 준비생 시절 했던 고민이 떠올랐습니다. 기자라는 꿈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졌을 법한 고민입니다.

     

     1인 미디어 시대입니다. 누구나 유튜브, 페이스북, 브런치 등의 플랫폼을 통해 자기 생각을 대중에게 전할 수 있습니다. 때론 사건을 처음 보도한 기자의 기사보다 이를 가공한 시사 유튜브 채널이 훨씬 더 큰 영향력을 갖기도 합니다. ‘꼭 기자를 해야만 하나’라는 생각이 자주 들었습니다.

     

     짧은 기자 생활을 하며 나름의 답을 찾았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에 ‘스피커’가 아무리 많아져도 여전히 기자만 할 수 있다는 일이 있다는 겁니다. 그건 바로 현장을 다니는 일입니다.

     

     수습 시절 종로 라인을 담당하던 때였습니다. 광화문 인근에서 뻗치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최대한 빨리 회사로 들어오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영문도 모르고 헐레벌떡 회사로 달려가니 차 한 대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차를 타고 향한 곳은 이천 물류창고 화재 현장이었습니다. 난생처음 겪는 대형 참사 현장을 2박 3일간 지키며 사망자 수가 늘어나는 걸 실시간으로 지켜봤습니다. 실종자 가족과 소방대원, 공무원과 경찰들이 뒤섞인 현장은 마치 작은 세월호 같았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유가족들의 사연을 직접 들었고, 공사 관계자들이 얼마나 안전에 신경 쓰지 않았는지를 직접 봤습니다.

     

     기자 생활을 하며 참 많은 ‘현장’을 다녔습니다. 코로나 사태 때는 선별 진료소와 확진자 동선을 추적했고, 교통사고가 일어나면 사고 장소와 장례식장을 찾았습니다. 그렇게 모아낸 팩트를 통해 현장을 재구성하고, 이를 독자들에게 전달했습니다. 기자가 아니었으면 평생 경험하지도 못했을 일입니다.

     

     기자가 그리 고상한 직업은 아닙니다. 오히려 블루칼라 노동자에 가깝습니다. 취재원 면전에서 욕을 먹거나 범죄 피의자 앞에서 머리를 숙이는 일도 잦습니다. 그런 기자가 가진 유일한 특권은 남들이 쉽게 경험하기 어려운 세상을 직접 보고 들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것만으로도 기자가 될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아직 기자라는 꿈을 품고 있다면, 조선일보는 그 꿈을 펼치기 최적의 장소입니다. 내로라하는 선배들과 함께 호흡하며 그들의 노하우를 어깨너머로 배울 수 있습니다. 항상 ‘타사보다 한 발짝 더’를 외치는 데스크들과 일하는 건 결코 쉽지 않지만, 그 경험을 통해 조선일보 기자들은 지금도 조금씩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그 ‘특권’을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 조선일보 장근욱입니다.

     종종 기자 생활이 어떠냐는 질문을 받으면 저는 자주 ‘본 시리즈’를 언급합니다. 맷 데이먼이 미국 CIA 전직 비밀요원을 연기하는 영화입니다. 얼핏 ‘자기가 무슨 영화 주인공인 줄 아느냐’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실은 그 반대입니다. 기자는 맷 데이먼을 잡으러 가는 ‘현직 요원’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영화에는 일상을 보내던 요원들이 연락을 받고 즉시 출동하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옵니다. 요원들은 어딘지도 제대로 모르는 곳에 가서 누군지도 제대로 모르는 맷 데이먼이랑 무작정 싸워야 합니다. 기자도 매일 벌어지는 새로운 일들을 밑도 끝도 없이 취재해야 하는 게 마찬가지 같습니다.

     

     시험 성적을 잘 내는 데 앞서, 기자를 왜 하고 싶은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기자 생활에서 개인적인 상황은 흔히 뒷전으로 밀리게 되더라고요. 계획해 놓은 사생활이 있을 때든, 몸과 마음이 지칠 때든, 언제라도 새로운 일이 터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힘든 상황을 극복하고 취재해서 기사를 써낼 강력한 동기가 있으실까요?

     

     여러분보다 제가 기자 생활을 더 했다고 해봐야 1년 반이지만, 그동안 조선일보에서 멋진 기자 선배들을 많이 뵈었다는 것은 자부할 수 있습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제가 생각하기에 기자를 하는 가장 강력한 이유란 ‘호기심’ 같습니다. 다른 그럴 듯해 보이는 동기는 오히려 약한 듯합니다. 나와 아예 동 떨어진 일도 궁금해 하고, 남들 누구보다도 집요하게 알아내고 싶어 하는 호기심이 기자 생활을 지탱하는 원동력으로 보입니다. 전혀 모르는 내용을 접해도 열심히 배우고, 전문적인 독자들이나 궁금해 할 내용도 미리 알아볼 수 있다면 ‘참 기자’ 아닐까 합니다.

     

     압도적인 호기심을 타고 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기자해 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드실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시험 과목인 상식이나 논술, 면접을 준비하는 과정을 호기심을 키워내는 시간으로 생각해 보면 어떨까 합니다. 밑도 끝도 없이 튀어나오는 새로운 시사에 지칠 때도 있겠지만, 거기에 매몰되지 않고 더 다양하고 더 깊이 있게 궁금해 볼 수 있는 기회로 삼으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합격에도, 그다음 기자 생활에도 힘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힘든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 경험을 말씀드리면 처음 입사해서 수습기자 생활을 할 때였습니다. 어느 지자체 정책에 대해 모든 기사가 칭찬일색인 것에 궁금함이 생겼습니다. 직접 가보니 지자체가 돕고 있다는 상인들이 거꾸로 동네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상인 아주머니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하시더니 어떻게 찾아왔냐고 반겨 주셨습니다. 그런데 곧 제가 건물주나 지자체가 보낸 요원 같은 사람은 아닐지 의심하셨습니다. 하지만 또 다행히 어느 아주머니 한 분이 여러분이 보고 계시는 recruit.chosun.com에서 합격자 명단의 제 이름을 찾아내 주셨습니다. 저를 둘러싼 아주머니 열 몇 분이 갑자기  합격 축하한다고 박수 치시면서 잘 왔다고 기뻐하시던 모습이 여전히 뇌리에 남습니다. 예측할 수 없이 이런 순간이 찾아온다는 게 신기합니다.

     

     여러분, 취준 생활 멋지게 극복하셔서 원하는 꿈 이루시기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