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記者)는 왜 ‘놈’일까?” 인턴 교육 때 이 질문에 각자만의 답을 내려보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글쎄요. 나름 열심히 공부해 치열한 경쟁을 뚫고 기자가 돼도 기껏 놈에 불과하다니. 흔히 말하는 ‘사짜 직업’처럼 고고한 선비(士)도, 벼슬(仕) 내지 스승(師)도 되지 못하는 처지가 참 아이러니했습니다. 이런 의문을 품고 수습기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지난 몇 달간 가장 뼈저리게 느낀 건, 세상이 그리 따뜻하지만은 않다는 겁니다. 한날 새벽 추위에 벌벌 떨다 들어간 파출소에선 경멸의 시선이 쏟아졌습니다. 친구 같아서, 아들 같아서 말 한마디 섞어줄 법도 한데 그런 온정은 경험하기 힘들더군요. 마와리 첫날, 다가오는 보고 시간에 허탕을 칠까 두려워 경찰관에게 애원했더니 겨우 5분 남짓 대화했던 기억이 납니다.
시민 인터뷰도 마찬가지입니다. 착한 인상에 뭔가 친절할 것 같은 사람을 골라잡아봐도 어찌나 매정하던지요. 어딘가 이상한 포교자들을 째려봤던 제 눈빛이 이랬겠거니 싶었습니다. 전화로 하면 덜할 줄 알았는데, 그마저도 취재 사유를 밝히면 말없이 툭 끊는 경우도 부지기수였습니다. 아마 수습기자로 살아보면 단 며칠 만에도 ‘이러려고 기자가 됐나’ 낙심할 순간이 올 겁니다.
이렇게 매일 사람에 치여 살지만, 그렇다고 사람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기자입니다. 그간 혼자 쓸 수 있는 기사는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결국엔 나한테 사소한 팩트라도 흘려줄 사람을 두는 것, 말이 되는 이야기를 나눠줄 사람을 찾는 게 일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가끔은 그런 사람들에게서 ‘아직은 살 만한 세상이구나!’ 위안을 얻기도 하면서요.
서두에 적은 질문의 답을 저는 이렇게 내리고 있습니다. 기자란 ‘늘 낮은 곳에서 놈의 자세와 신분으로 다가갈 준비가 돼 있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고개를 빳빳이 들고 달려들어야 할 때도 있지만, 아직까진 그러지 않아야 할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사실 앞에 겸손하라’는 기자의 미덕도 팩트를 얻기 위해서라면 곤욕을 감수하고 낮은 자세로 임하라는 얘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차가운 현실만 적은 것 같은데, 사실 기자로서 느끼는 성취감은 감히 표현하기가 어렵습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중요한 팩트를 캐냈을 때의 그 짜릿함은 직접 경험해봐야만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래 친구들은 상상도 못 할 경험을 밥 먹듯 할 수 있기도 합니다. 때문에 왜 수많은 선배들이 이 업에 자부심을 갖고 일하는지도 조금씩 깨닫고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기자란 꿈을 품고 계신다면, 꼭 한 번 도전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저도 여러분이 믿고 의지할 만한 놈이 되어 기다리고 있겠습니다.